PROFILE
관리자   |    포스트    |    로그아웃
블로그   |    위치로그   |    태그로그   |    방명록 남겨 주시와요~~ ^^
김정식
햇살, 바람, 맑은공기, 푸르름... 그안에서 조용한 사람...
프로필
전체 (101)
국내산행 (83)
국내여행 (2)
고향백령도 (0)
산악문학-산사람 (12)
해외산행 (3)
해외여행 (0)
일상 (0)
«   2009/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산악인 엄홍길..
목록열기: 산악문학-산사람 Date : 2008/04/22 21:08
2008/04/22 21:08 2008/04/22 21:08

출처 : 네이버 지식인 (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6&dir_id=61502&eid=PAfDr5gcyKGHCs5etPeNFcgv+6OdvKO1&qb=vvbIq7Hm)


Ⅰ. 산과 산악인 엄홍길과의 인연

 엄홍길이 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도봉산 중턱으로 그의 양친이 이사를 결정하면서부터이다. 그곳에 삶의 터전을 잡고, 등산객을 주 상대로 한 장사를 하며 생활하였는데, 이 때가 그의 나이 3살이었으므로 자연 속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성장함에 따라 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산을 오르내리며 통학하게 되었다. 당시, 그가 가장 싫었던 것은 친구들이 자신의 집에 놀러 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중반 때까지 집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지형적 특성으로 인하여 문명의 혜택에서 조금은 비껴간 생활을 했던 탓이다.

 그 때는 친구들의 집과 자신의 집을 비교하면서 부모님에 대한 원망도 하였지만 산에 빠지고, 산에 미치면서부터는 산에 삶의 터전을 잡으신 부모님께 감사 드리게 되었다고 한다.

 엄홍길은 평지를 오래 걷는 것보다 산길을 오르는 것이 더 즐겁고,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이 얼마나 좋은가를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환경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파한다.

 어릴 적부터 자연에서 살았던 것이 산악인 엄홍길을 만들었고, 더 높은 산을 오르고 싶은 열망이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 기록으로 이어진 것이다.


Ⅱ. 불굴의 도전정신 – 14좌 완등 성공의 바탕

 1) 하나된 생각과 목표, 해낼 수 있다는 의지

히말라야 원정을 위해 대원 구성을 하는데, 히말라야를 경험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두 실패를 예상하였고 안 될 것이라 하였지만, 엄홍길은 우리의 목표는 정상이며 못할 이유가 없다,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서로 동료를 믿으면서 맡은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하였다. 개인주의, 무사안일주의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지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며 8,000m가 넘는 산을 오르는 일인데, 어느 한 부분이라도 소홀해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나친 사소한 일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므로 작은 일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즉, 대원 모두가 빈틈이 없어야 하며 현장과 실전에서 그 작은 틈이 사고와 실패, 생과 사의 갈림길을 결정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전 대원의 하나된 목표(정상)와 마음(해낼 수 있다는 의지)이 있었기 때문이다.


 2) 긍정적 마인드, 해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

산을 오를 때 부대 짐은 굉장히 많다. 베이스캠프까지 짐을 운반하는 방법은 세 가지이다.

첫째로 포터(현지에서 짐을 운반해 주는 인부)를 고용하는 것이고, 둘째는 직접 지고 올라가는 것, 셋째는 헬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 중,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방법은 포터를 고용하는 것인데, 이들의 하루 임금은 우리 돈으로 약 5,000원~10,000원 정도다. 그 적은 돈을 받고 히말라야 등반대를 위해 짐을 들고 오르내린다. 하지만, 그 속에서 만족하는 욕심 없는 소박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첫 도전 당시 해발 4500미터 지점,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고 그 때 느낀 점은 그 동안 내가 준비한 모든 것을 정상을 향해 쏟아 붓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내 자신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를 느끼게 되었고 그 첫 원정은 실패하였다.

  두 번째 도전을 하게 되었다. 같은 루트, 같은 계절에. 겨울 시즌-최악의 기후-에 재도전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꼭 성공하겠다는 다짐으로 실패의 경험을 바탕 삼아 철저한 준비로 재도전을 하였으나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일주일만 있으면 성공하겠구나 싶었는데 사고가 발생하였다. 산소를 운반하던 동료가 추락하여 크레바스 속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렇게 첫 희생자가 발생하였고, 희생자에 대한 죄책감과 산에 대한 두려움에 산을 포기하려 하였다.

그런데 다른 일을 찾으려 하여도 산에 대한 마음을 버릴 수 없었고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

결국 세 번째 도전을 하게 되었고 정상을 밟았다. 만약 포기하였다면, 계속 포기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

 두 번의 실패를 딛고 이루어낸 세 번째 도전의 성공을 통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내었고, 그 정점에서 하니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이후에 도전하는 등반에 대한 자신감과 용기의 바탕이 되었다.

  이후 엄홍길은 계속 실패를 거듭하였고, 사고도 당했다. 정상을 밟지 못한 경험도 더 경험하였고, 동상에 걸려 신체의 일부를 절단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사실 그 당시의 엄홍길은 14개 봉우리를 전부 정복하리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기회가 주어지면 그저 그 하얀 산이 좋아서, 히말라야가 좋아서 그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도 한번 해보자 라는 자신감을 갖고 매달린 것은 95년 봄. 엄홍길과 가깝게 지내던 스페인 국적의 친구가 계기였다. 14개 봉우리를 완등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착착 진행하는 그를 보면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느꼈다고 한다.

그가 엄홍길에게 함께 등반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 온 때는 94년 겨울이었다. 95년 봄에 등반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엄홍길은 산을 오를 준비만 해 오면 된다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조건까지 걸었다. 그런데, 엄홍길의 머리 속에는 또 걱정이 앞서고 있었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의 차이도 있는데 과연 한 팀으로 정상을 함께 오를 수 있겠는가 하는 두려움이었다.

가장 중요한 팀웍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망설였지만 결국 한번 해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함께 등반을 시작하였다.

엄홍길은 스스로 두 가지만큼은 지키겠다 다짐하고 합류했다.

첫째는 희생. 동료들을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희생하겠다.

둘째는 긍정적 마인드. 누구보다 앞서가겠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다짐한 두 가지를 지키기 위해 대원들이 힘들다고 할 때 짐을 지고 독려하며 올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어 주었지만 실패를 거듭하였다. 두 번의 실패 후 회의를 열었고, 포기하고 내려가자는 제안이 나왔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한다면, 모든 실패의 원인은 자신에게 귀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엄홍길은 정상을 향해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해보자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리고 그 절박한 마지막 도전에서 성공하였으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느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한번 해보자는 자세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5번의 등반을 함께 하였고 모두 성공하였다. 엄홍길은 대원들에게서 조직력과 철저한 계획성을 배웠고 대원들은 엄홍길에게서 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배워갔다.

확실한 목표와 그에 대한 자신감이 성공의 바탕이었다.

그리고 K2 봉우리 끝에 서며 16년간의 꿈을 이루었다.

3) 희생정신, 끊임없는 도전정신

이 모든 것 가운데서도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동료들의 희생이다. 성공과 실패의 확률은 50%씩이지만 그 속에서 갈등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엄홍길은 동료들의 희생을 생각한다. 히말라야 14봉을 완등하면서 10명의 동료를 잃었지만, 그들과 함께 오른다고 생각하였고 그 결과가 현재이다.

  무수한 실패와 사고, 희생. 안나푸르나는 심지어 4번 실패하고 5번만에 올랐다.

  최초로 산을 안나푸르나를 정복한 사람은 동상으로 손가락을 절단했고, 다른 한 사람은 실명하였다. 엄홍길은 크레바스로 동료 세 명을 잃었다. 그만큼 위험하고 정상에 오르기까지 큰 대가를 요구하는 산이다.

  3번의 실패 후, 4번째 도전에서는 그 스스로도 안나푸르나 정상에 서기 위해 간절한 기도를 하였다. 시작부터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조심하고 또 조심하였다. 7500m지점에 도착하였을 때, 그에게 욕심이 생겼다. 오만해지고 경계를 늦추게 되었으며 긴장은 이미 다 풀어졌다. 약 300m가 남았을 무렵, 동료로부터 크레바스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번 건너봐 하는 순간 동료가 사라졌다.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아, 또 희생자가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찰나의 순간 엄홍길도 사고를 당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줄에 엉켜 눈 속에 파묻혀 있었고 다리를 빼내어 보니 다리가 정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정상이 눈앞이니 또 욕심이 생기고 실수한 동료를 나무랐다. 하지만 엄홍길은 실수의 근본적 원인은 그 스스로에게 있으며 과욕을 부려 모두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말한다. 그는 다리가 다쳐 오를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서야 4번째 도전이 실패임을 인정하였다.

다친 다리를 끌고 내려오면서도 안나푸르나에 대한 원망을 하였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기고 미끄러지면서 내려왔다. 고통스러운 날이 반복되었다. 다리에 대한 감각이 점점 희미해져 갔지만 그 와중에도 안나푸르나에 대해 꼭 오를 것을 맹세하였다.

  병원 후송 후, 뼈가 두 동강이 나는 큰 골절상을 당했음을 확인하였고, 대수술 후 앞으로 산에 못 가는 것은 물론 뛸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에 엄홍길은 그저 눈물만 흘렸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도봉산을 바라보면서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5개월간 재활에 전념하여 백운대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다시 10개월만에 안나푸르나를 올랐다. 고통스럽고 주저앉고 싶었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내 인생도 끝이라는 생각에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5번째 도전은 스페인 친구와 함께하였다. 여기서 그는 안나푸르나 정복에 성공하였지만, 동료를 또 잃고 말았다.

  동료들의 희생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히말라야 14봉 완등을 이끌어냈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Ⅲ. 마치며

 도전과 열정. 이것이 엄홍길의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 성공의 원동력이라고 그는 말한다.

“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16번째 봉우리를 향해 떠날 예정입니다.”

모두 꿈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라

[blog.oracleclub.com] 김정식의 여행 블로그 "걸어가다 보면.."
,
상위로
엮인글 쓰기 0 | 덧글 쓰기 0 | 목록 열기
http://blog.oracleclub.com/trackback/92
[로그인][오픈아이디란?]
Creative Commons License 블로그 내에 모든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코리아 저작자표시 - 비영리 - 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최근 올라온 글
블로그 최근 덧글
최근 엮인글
Today : 69
Yesterday : 127
Total : 45864
Powered by Textcube 1.6.2 : Arpeggio
Skin by mulder21c
RSS 주소보기 E-Mail 보내기